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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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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기간 중에 정동의 역사문화시설을 야간까지 연장 개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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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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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사적 제124호  

입장료 대인(만25세 이상) 1,000원      개방시간 ~22:00 (입장마감 21:00)
시설 전시 및 공연 덕수궁 석조전 관람:60분 소요/ 26(금) 18:00, 19:00, 27(토) 18:0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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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석조전 탐방 프로그램 : 60분 소요 / 26일(금) 18:00, 19:00 / 27일(토) 18:00, 19:00 / 집결위치 덕수궁 후문 ]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 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그 후 광해군이 1615년(광해 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습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 일원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기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 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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